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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교토 골목의 화투 가게가 마리오를 만들기까지 — 닌텐도 130년의 기록

1889년 교토 골목의 화투 가게가 마리오를 만들기까지 — 닌텐도 13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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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배관공의 이름은 마리오다. 빨간 모자를 눌러쓰고 콧수염을 기른 이 이탈리아계 배관공은 지난 40년간 전 세계 수억 명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 그런데 마리오의 진짜 고향은 이탈리아도, 미국도 아닌 일본 교토다. 그리고 그 회사의 시작은 놀랍게도 화투였다.

닌텐도의 역사는 단순한 기업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1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회사는 수차례 사업을 바꿨고, 수차례 실패했으며, 수차례 벼랑 끝에 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고, 결국 역사를 만들었다. 어떻게 화투 가게가 마리오를 낳았는지, 그 긴 여정을 따라가 보자.

1889년, 교토 골목에서 팔린 화투 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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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메이지 유신의 열기가 일본 전역을 달구던 시절이었다. 서양 문물이 밀려들어오면서 전통 문화는 빠르게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바로 그 해, 교토 시모교 구의 좁은 골목에서 야마우치 후사지로라는 한 남자가 작은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닌텐도 곳파이(任天堂骨牌). 그가 파는 것은 딱 하나, 화투였다.

화투는 원래 일본 전통 놀이 도구가 아니다. 16세기 포르투갈 선원들이 일본에 가져온 카드 놀이가 수백 년에 걸쳐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이다. 48장의 패에는 꽃, 달, 새, 비, 바람이 담겼다. 귀족과 상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오락이었지만, 동시에 도박과 결부된 부정적 인식도 따라다녔다.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그 이미지를 바꾸려 했다. 그가 만든 화투는 달랐다. 최고급 일본 화지에 손수 채색한 화투였다. 한 장 한 장에 정성을 쏟았고, 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색감과 질감은 공장제품과 차원이 달랐다.

닌텐도라는 이름의 한자(任天堂)는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이다. 혹자는 이 이름이 훗날 예언이 되었다고 말한다. 1900년대 초, 닌텐도는 황실 어용 화투 제조사로 인정받으며 교토 최고의 화투 회사로 성장했다. 황실에서 쓰는 화투를 납품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최고의 마케팅이었다. 작은 가게는 어엿한 회사가 되었다.

그러나 화투 사업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도박 산업과의 연관성 때문에 사회적 낙인이 끊이지 않았고, 전쟁과 경제 변동을 거치면서 수요는 불안정했다. 야마우치의 후손들이 회사를 이어받으면서 닌텐도는 생존했지만, 도약의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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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닌텐도에 변화가 찾아왔다. 창업자의 손자 야마우치 히로시가 21세의 나이에 사장직을 맡았다. 당시 그는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사장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고, 가족 회의에서 야마우치가 맡지 않으면 회사를 남에게 넘기겠다는 조건이 달렸다. 그는 학교를 그만뒀다.

취임 첫날, 야마우치는 임원들을 모두 불러 놓고 선언했다. “내 명령에 따르지 않을 사람은 필요 없다.” 임원 전원이 해고되었다. 21세 청년의 첫 번째 결단이었고, 이것이 이후 닌텐도를 50년 가까이 이끌어갈 야마우치 히로시의 방식이었다.

야마우치는 화투만으로는 회사가 클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업을 확장했다. 첫 번째 도전은 택시 회사였다. 운전기사 노동조합과 분쟁이 터져 철수했다. 두 번째는 러브호텔 체인. 사회적 비판이 거세져 접었다. 세 번째는 인스턴트 밥 사업. 라이벌 회사에 밀려 실패. 네 번째는 진공청소기. 이것도 망했다. 7년 동안 4개 사업이 연속으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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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야마우치는 말했다. “실패해도 좋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 고집이 결국 닌텐도를 다음 단계로 이끌었다.

1966년, 야마우치는 교토 공장을 순시하다가 창고에서 한 직원과 마주쳤다. 직원의 이름은 요코이 군페이. 그는 카드 포장용 고무 장갑으로 신기한 집게 장난감을 만들어 혼자 갖고 놀고 있었다. 야마우치는 말했다. “이걸 장난감으로 만들어봐라.” 1967년 출시된 울트라 핸드는 첫 해에만 120만 개가 팔렸다. 닌텐도는 화투 회사에서 장난감 회사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97%가 증발한 날 — 아타리 쇼크와 게임 산업의 붕괴

1970년대 말, 아타리(Atari)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 산업을 개척했다. 아타리 2600은 수백만 대가 팔렸고, 게임 카트리지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82년 미국 비디오 게임 시장의 규모는 32억 달러, 한화로 약 4조 3,000억 원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흥분했고, 수십 개의 게임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문제는 질보다 양이었다. 시장이 커지자 수익만을 노린 저질 게임이 쏟아졌다. 게임 회사들은 완성도보다 출시 속도를 우선했다. 소비자들은 비싼 게임 카트리지를 샀다가 실망을 반복했고, 신뢰는 서서히 무너졌다.

결정타는 1982년에 터졌다. 아타리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를 원작으로 한 게임을 출시했다. 당시 E.T.는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다. 아타리는 400만 장의 카트리지를 찍어냈다. 하지만 게임은 재앙이었다. 조작이 직관적이지 않았고, 게임 목표가 불분명했으며, 플레이어는 반복적으로 구덩이에 빠졌다. 소비자들은 환불을 요구했고, 반품된 카트리지가 창고를 가득 메웠다. 팔리지 않은 카트리지 수백만 장은 결국 뉴멕시코 사막에 매립되었다. 그 매립지는 2014년에 발굴되어 비디오 게임 역사의 유물로 회수되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1983년 미국 비디오 게임 시장은 32억 달러에서 단 1억 달러로 추락했다. 97%가 증발한 것이다. 수십 개의 게임 회사들이 도산했고, 대형 소매점들은 게임 코너를 통째로 없앴다. 전문가들은 선언했다. 비디오 게임의 시대는 끝났다고.

그런데 바로 그 해, 일본에서 조용히 한 기계가 출시되었다. 닌텐도의 패미컴이었다.

리콜이냐, 침묵이냐 — 임원회의실에서 내려진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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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패미컴은 1983년 7월 일본에서 출시되었다. 가격은 14,800엔으로, 당시 경쟁 기기보다 훨씬 저렴했다. 초기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출시 직후, 닌텐도 본사에 이상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부 기기에서 게임이 갑자기 멈추거나 오작동하는 현상이 보고되었다. 원인은 패미컴 내부에 사용된 특정 반도체 칩의 결함이었다. 닌텐도가 외부 협력사로부터 납품받은 칩에 미세한 불량이 있었던 것이다. 결함 발생 비율은 전체 생산량의 일부였지만, 불량 기기가 소비자 손에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결단의 기로에 섰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침묵이었다. 공식 발표 없이 조용히 개선된 칩을 탑재한 버전으로 교체하고, 소비자들이 운 나쁜 경험을 개인의 불운으로 받아들이게 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량 리콜이었다. 당시 닌텐도의 재무 상황으로 봤을 때, 전량 리콜은 회사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야마우치는 리콜을 선택했다. 출시 두 달 만에 닌텐도는 기존에 판매된 패미컴 전량을 자발적으로 수거했다. 칩을 교체하고 수리 비용은 닌텐도가 전액 부담했다. 야마우치는 말했다. 지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소비자가 닌텐도를 신뢰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결과는 장기적으로 닌텐도에게 돌아왔다. 소비자들은 닌텐도가 문제를 숨기지 않고 즉시 해결하는 회사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1984년 개선된 패미컴이 재출시된 이후 판매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일본에서만 1,987만 대가 팔렸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야마우치는 다음 목표를 세웠다.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도 열어주지 않는 문 앞에서: 닌텐도의 미국 상륙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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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 쇼크 이후 미국 소매점들은 비디오 게임이라는 단어 자체를 기피했다. 토이저러스, 시어스, 월마트 등 주요 소매 체인들은 게임 코너를 없앴거나 대폭 축소했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영업 사원들이 납품 제안을 들고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바이어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비디오 게임은 이미 끝난 거잖아요.

닌텐도는 전략을 바꿨다. 첫 번째 변화는 이름이었다. 일본 이름 패미컴 대신 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즉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게임기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었다. 기기 디자인도 바꿨다.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처럼 카트리지를 가로로 밀어 넣는 방식으로 변경해 게임기처럼 보이지 않도록 했다.

두 번째 전략은 R.O.B.였다. Robotic Operating Buddy, 즉 작은 로봇 장난감을 NES와 함께 동봉했다. R.O.B.는 실제 게임에서 거의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장난감 매장 직원들이 NES를 게임기가 아닌 첨단 장난감으로 분류하게 만든 것이다. 게임기 코너가 아닌 장난감 코너에 NES가 진열되었다. 소비자들은 아타리 쇼크를 떠올리지 않고 NES를 집어 들었다.

세 번째는 뉴욕 테스트 마케팅이었다. 1985년 10월, 닌텐도는 뉴욕시 일부 지역에서만 NES를 시범 판매했다. 소매점에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팔리지 않은 재고는 닌텐도가 전량 다시 사가겠다는 것이었다. 소매점 입장에서는 손해 볼 일이 없는 거래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1986년에는 전미 주요 도시로 확대되었고, 1987년에는 전국 판매로 이어졌다.

아무도 열어주지 않던 문이 닌텐도의 집요함 앞에 결국 열렸다. NES는 미국에서 3,400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타리가 죽인 시장을 닌텐도가 되살린 것이다. 1986년에는 미국 가정용 게임 시장이 다시 5억 달러를 넘어섰다. 죽었다고 선언된 시장이 되살아났다.

4,000만 장의 마리오, 그리고 변하지 않은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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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 출시와 함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세상에 나왔다. 개발자는 미야모토 시게루였다. 그는 동키콩을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마리오는 원래 동키콩에 처음 등장한 캐릭터로, 당시 이름은 점프맨이었다.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창고 관리인 마리오 세갈리의 이름을 따서 마리오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전 세계에서 4,00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전례 없는 숫자였다. NES 한 대를 사면 마리오를 해야 한다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마리오는 곧 닌텐도의 상징이 되었고, 이후 수십 개의 시리즈로 이어졌다. 2023년 개봉한 영화 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무비는 전 세계에서 1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마리오의 성공 뒤에는 미야모토의 독특한 철학이 있었다. 규칙은 단순하되, 숙련하면 할수록 깊어지는 구조. 처음 해보는 사람도 30초 안에 조작법을 배울 수 있지만,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려면 수십 시간이 필요했다. 어른도 아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 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마스터하기 어려운 구조는 이후 닌텐도가 만든 모든 게임의 근간이 되었다.

요코이 군페이는 다른 철학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낡은 기술의 수평 사고. 최신 기술을 쫓는 대신, 성숙하고 저렴한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한다는 원칙이었다. 1989년 출시된 게임보이는 당시 경쟁 제품보다 성능이 낮았다. 컬러 화면도 없었고, 해상도도 낮았다. 하지만 배터리가 오래 가고, 가격이 저렴했으며, 어디서든 들고 다닐 수 있었다. 게임보이는 후속 기기를 포함해 1억 1,800만 대가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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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가 130년 넘게 살아남은 이유를 한 가지로 압축하면 그것은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다. 화투 가게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화투 한 장 한 장에 정성을 쏟았듯, 닌텐도는 언제나 재미 그 자체를 최우선에 뒀다. 시장이 무너졌을 때도, 소매점이 문을 닫았을 때도, 경쟁사가 더 강력한 하드웨어를 들이밀었을 때도, 닌텐도는 그 한 가지 기준으로 돌아왔다. 이게 재미있는가?

7년간 4개 사업이 실패했을 때도, 창고에서 직원이 혼자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을 때도, 미국 소매점이 문전박대를 할 때도, 닌텐도는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닌텐도 곳파이의 한자, 任天堂. 운명을 하늘에 맡긴다는 그 이름처럼, 닌텐도는 트렌드와 시장 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재미라는 한 가지에 운명을 걸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의 원본 영상: {{youtube_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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