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만 달러에 팔린 6개 매장
1987년, 시애틀의 작은 원두 판매점 하나가 380만 달러에 팔렸다. 당시 이 회사의 매장은 단 6개. 그런데 이 가게를 사들인 사람은 불과 2년 전까지 바로 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던 직원이었다. 33살의 하워드 슐츠. 직원이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사장이 된 셈이다. 그리고 이 작은 원두 가게의 이름은 오늘날 전 세계 3만 개가 넘는 매장을 거느린 스타벅스였다.
이 인수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직원이 회사를 샀기 때문이 아니다. 그 90일의 협상 과정에는 거절, 배신, 그리고 한 통의 전화가 만든 극적인 반전이 숨어 있었다. 만약 그 마지막 순간의 개입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스타벅스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브루클린 임대주택에서 자란 소년
하워드 슐츠를 이해하려면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부터 봐야 한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공공 임대주택 단지에서 성장했다. 일곱 살 무렵, 트럭 운전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일하다 다리를 다쳐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그 가정에는 의료보험도, 퇴직금도, 산재 보상도 없었다. 한순간에 가족은 경제적으로 무너졌다.
어린 슐츠가 목격한 그 장면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한 사람이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가족 전체가 안전망 없이 추락하는 모습. 훗날 그가 스타벅스를 경영하며 시간제 직원에게까지 의료보험을 제공한 결정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슐츠는 한 주방용품 회사의 영업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시애틀에 있는 작은 원두 가게 하나가 자신의 회사보다 커피 추출기를 더 많이 주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기심을 느낀 그는 직접 시애틀로 향했다. 그 가게가 바로 스타벅스였다.

밀라노가 바꾼 운명
1982년, 슐츠는 마케팅 책임자로 스타벅스에 입사했다. 당시 스타벅스는 원두와 커피 기구를 파는 소매점이었을 뿐, 우리가 아는 카페가 아니었다. 매장에서 커피를 내려 파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1983년, 슐츠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난다. 회사 출장으로 이탈리아 밀라노를 방문한 것이다. 밀라노 한복판의 에스프레소 바에서 그는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들이 커피를 사이에 두고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고, 바리스타와 손님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의 매개였던 것이다.
슐츠는 미국으로 돌아와 흥분에 차 이 경험을 회사에 제안했다. 원두만 팔지 말고, 매장 안에서 직접 에스프레소를 내려 파는 카페 공간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창업자들의 답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자신들은 원두 로스팅 회사이지 음식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그들에게 슐츠의 제안은 회사의 정체성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었다.

거절당한 직원, 자기 회사를 차리다
비전을 거절당한 슐츠는 1985년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스타벅스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자신의 생각을 직접 증명하기로 했다.
그는 일 지오날레(Il Giornale)라는 이름의 에스프레소 카페를 차렸다. 이탈리아어로 신문, 혹은 매일이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었다. 자본이 없던 슐츠는 시애틀의 투자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신의 비전을 설득했고, 초기 자본금 160만 달러를 모았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를 거절했던 스타벅스의 창업자들이, 정작 그가 독립할 때는 첫 투자자가 되어 주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슐츠의 아이디어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회사에 맞지 않는다고 본 것이었다.
일 지오날레는 문을 열자마자 성공했다. 밀라노에서 본 그 공간이 시애틀에서도 통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슐츠의 카페는 빠르게 손님으로 채워졌고, 그의 비전은 더 이상 망상이 아니라 검증된 사업 모델이 되었다.

90일의 시간, 380만 달러를 모아라
그리고 1987년, 운명의 전화가 걸려온다. 스타벅스의 창업자 제리 볼드윈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인수자는 다름 아닌 슐츠였다.
조건은 명확했다. 매장 6개와 로스팅 공장, 그리고 스타벅스라는 이름까지 포함해 380만 달러. 단, 90일 안에 그 돈을 마련해 오라는 것이었다. 볼드윈은 슐츠에게 90일의 독점 협상 기간을 주었다.
슐츠는 다시 투자자들을 찾아 나섰다. 자기 회사인 일 지오날레보다 더 큰 회사를, 그것도 자신의 옛 직장을 사들이기 위한 사상 최대의 모금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시애틀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시간은 촉박했고, 금액은 거대했다.

“경쟁 매수자가 나타났습니다”
모금이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협상은 뜻밖의 위기를 맞는다. 볼드윈이 슐츠를 다시 불렀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볼드윈은 무거운 목소리로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경쟁 매수자가 나타났으며, 그 사람이 바로 슐츠의 일 지오날레 투자자 중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슐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자신의 회사에 돈을 댄 사람이, 이제 자신이 사려는 회사를 가로채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슐츠가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였다. 신뢰가 배신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경쟁자의 정체는 시애틀의 거물 사업가이자 유명한 자선가였던 샘 스트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400만 달러 현금 대 380만 달러
경쟁자가 제시한 조건은 슐츠를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슐츠는 380만 달러를 90일에 걸쳐 어렵게 모으는 중이었다. 반면 그 거물은 400만 달러를 현금으로, 그것도 까다로운 실사 절차 없이 즉시 내겠다고 했다.
더 많은 돈을, 더 빠르게, 더 간단하게. 회사를 파는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거의 없는 제안이었다. 협상 테이블의 균형은 순식간에 기울었다. 슐츠가 2년간 쌓아 올린 비전과 6개월간 뛰어다닌 모금이, 단 한 장의 현금 수표 앞에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 대목은 비즈니스 협상에서 자금의 속도와 확실성이 금액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매도자에게는 분할 약속보다 즉시 현금이, 조건부 거래보다 무조건 거래가 훨씬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슐츠는 객관적인 조건만 놓고 보면 명백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빌 게이츠 시니어가 책상 위로 몸을 기울였다
절망에 빠진 슐츠는 자신의 변호사 스콧 그린버그를 찾아갔다.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린버그는 자신이 속한 로펌 프레스턴 게이츠의 창업자를 직접 데려왔다. 바로 빌 게이츠 시니어였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빌 게이츠의 아버지이자, 키가 2미터에 가까운 거구의 변호사였다.
게이츠 시니어는 슐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산책을 가자는 것이었다. 그는 슐츠를 데리고 길을 건너 레이니어 타워에 있는 그 거물의 사무실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거대한 몸을 책상 위로 기울이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위압적인 체구와 흔들림 없는 권위 앞에서, 거물은 결국 물러섰다. 훗날 게이츠 시니어는 그 순간 이 청년이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회상했다.

165개에서 3만 개로
1987년 8월, 슐츠와 시애틀의 지역 투자자들은 마침내 380만 달러로 스타벅스를 인수했다. 슐츠는 자신의 회사 일 지오날레를 스타벅스에 합병하고, 일 지오날레라는 이름은 버린 채 더 울림이 좋은 스타벅스라는 이름을 남겼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인수 당시 6개였던 매장은 슐츠의 손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92년에는 매장 165개에 연 매출 93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나스닥에 상장했다. 2000년에는 3500개 매장에 연 매출 22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오늘날 스타벅스는 전 세계 3만 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의 카페 체인이 되었다.
원두를 파는 6개 매장이 세계 최대의 커피 제국으로 바뀌기까지, 그 출발점에는 1987년의 그 90일이 있었다.

슐츠가 끝까지 지킨 세 가지 원칙
가난한 직원이었던 슐츠가 이 회사를 키우며 끝까지 지킨 원칙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그는 모든 직원을 직원이 아니라 파트너라고 불렀다. 시간제 직원에게까지 의료보험과 스톡옵션을 제공했는데, 이는 보험 없이 무너지는 아버지를 지켜본 어린 슐츠의 상처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에게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신념의 문제였다. 직원이 안정감을 느껴야 손님에게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당시 미국 소매업계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둘째, 그는 커피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고 믿었다.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그 사이의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이 스타벅스의 핵심 철학이 되었다. 밀라노에서 받은 충격이 하나의 경영 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사람들은 단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자기만의 자리를 사기 위해 스타벅스를 찾았다.

셋째, 그는 회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직접 경영 일선에 복귀해 회사를 다시 일으켰다. 2008년 금융위기로 스타벅스가 흔들렸을 때도 그는 CEO로 돌아와 수백 개의 부실 매장을 정리하고 회사를 재건했다. 슐츠에게 스타벅스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끝내 증명하고 싶었던 자기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마치며
33살의 직원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380만 달러에 사들였고, 그 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큰 카페 체인으로 키웠다. 거절당한 제안 하나, 직접 차린 작은 카페 하나,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한 통의 전화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꿨다.
돌아보면 이 이야기의 결정적 장면들은 모두 우연처럼 보인다. 밀라노 출장이 아니었다면, 창업자들이 회사를 팔지 않았다면, 변호사가 게이츠 시니어를 부르지 않았다면. 그러나 그 우연을 기회로 바꾼 것은 슐츠의 집요함이었다. 그는 거절당할 때마다 멈추지 않고 다음 문을 두드렸다.
슐츠의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단지 그가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거절을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에게 90일의 시간과, 자신을 거절했던 회사를 사들일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걸 수 있을까. 슐츠의 90일은 그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