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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년 제국 시어스는 왜 무너졌나 — 세계 1위 소매기업 몰락의 전말

125년 제국 시어스는 왜 무너졌나 — 세계 1위 소매기업 몰락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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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였던 회사가 사라졌다

2018년 10월, 미국 소매업의 상징이던 시어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무려 125년을 버틴 제국이었다. 한때 미국 가정은 냉장고와 세탁기는 물론, 조립식 주택 한 채까지 시어스 카탈로그로 주문했다. 두꺼운 카탈로그 한 권이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이 기차역을 거쳐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파산 무렵 남은 매장은 700개 아래로 줄어 있었고, 2026년 현재 미국 전역에 남은 시어스 매장은 단 다섯 곳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 기업이 어떻게 스스로 무너졌는지, 그 30년의 과정을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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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우체통 안에 넣은 백화점

이야기는 19세기 말 미국 시골에서 시작된다. 당시 농부들은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마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했고, 동네 잡화점은 값을 마음대로 불렀다. 리처드 시어스라는 젊은 역무원은 여기서 기회를 봤다. 그는 우편으로 시계를 팔기 시작했고, 곧 시계 수리공이던 알바 로벅과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카탈로그 한 권에 수천 가지 상품을 담아 전국 농가에 뿌렸다. 도시의 백화점을 시골 우체통 안으로 옮겨 놓은 셈이었다. 주문서를 넣으면 며칠 뒤 기차역에 물건이 도착하는 이 방식은, 당시로서는 마법과도 같았다. 시어스는 곧 미국 시골 경제의 혈관을 파고들었다. 20세기 초 시어스 카탈로그는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로 불어났고, 미국 가정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농기구와 재봉틀은 물론, 바이올린과 묘비, 심지어 부품을 실어 보내 직접 조립하는 주택 키트까지 카탈로그 안에 들어 있었다. 시골 사람들에게 시어스 카탈로그는 단순한 상품 목록이 아니라, 도시의 풍요를 처음으로 손에 쥐여 준 창문이었다. 정가를 인쇄해 흥정을 없앤 판매 방식은 신뢰를 낳았고, 그 신뢰가 곧 브랜드의 힘이 되었다.

제국을 세운 진짜 주인공

회사를 진짜 제국으로 키운 사람은 창업자가 아니라 율리우스 로젠월드였다. 그는 카탈로그 판매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물건을 빠르고 정확하게 보내지 못하면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로젠월드는 시카고에 거대한 물류 센터를 세웠다. 컨베이어 벨트와 우편 주문 시스템이 하루 수만 건의 주문을 처리했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 공장을 설계하며 이 물류 시스템을 참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시어스의 물류는 시대를 앞서 있었다. 1906년, 시어스는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공개를 성사시켰다. 시골 우편 회사가 월가의 총아로 올라선 순간이었다. 로젠월드는 경영자이자 자선가이기도 했다. 그는 벌어들인 부의 상당 부분을 사회에 돌려주었고, 미국 남부에 수천 개의 학교를 세우는 일을 도왔다. 그가 남긴 경영 철학은 단순했다.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면 언제든 돈을 돌려준다는 환불 보장이었다. 이 파격적인 약속은 우편으로 물건을 사는 데 대한 불안을 없앴고, 시어스를 미국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회사로 만들었다. 물류와 신뢰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서 시어스는 반세기 동안 흔들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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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그리고 세계 1위로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리기 시작했다. 시어스는 이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1925년, 카탈로그 회사가 처음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문을 열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시어스 매장은 미국 도시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1972년에 이르러 시어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 기업이 되었고, 직원 수만 35만 명이 넘었다. 이듬해 시카고에는 110층짜리 시어스 타워가 완공되어, 25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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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정점

숫자로 보면 시어스의 정점은 더욱 압도적이다. 1972년 시어스의 시가총액은 약 180억 달러에 달했다. 1906년 상장 당시의 1,500만 달러에서 1,200배 넘게 불어난 규모였다. 시어스 타워는 높이 1,454피트, 110층으로 지어져 시카고의 하늘을 지배했다. 미국 전체 소매 매출의 상당 부분이 이 한 회사를 거쳐 갔다. 카탈로그 하나로 시작한 회사가 한 나라의 소비 지도를 통째로 다시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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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지각

1980년대, 시어스의 발밑에서 지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칸소의 작은 시골에서 샘 월튼이 월마트를 키우고 있었다. 월마트는 오직 한 가지에 집중했다. 무조건 싸게 파는 것이었다. 반면 시어스는 보험사 올스테이트, 증권사 딘 위터, 부동산 회사 콜드웰 뱅커를 사들이며 금융 그룹으로 변신하려 했다. 1985년에는 디스커버 카드까지 내놓았다. 회사의 눈이 매장 바깥으로 향하는 동안, 정작 본업인 매장은 점점 낡아 갔다. 경영진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당시 시어스 경영진은 금융 사업이 안정적인 수익을 안겨 준다는 점에 취해 있었다. 실제로 한동안은 카드와 보험에서 나오는 이익이 부진한 소매 부문을 떠받쳐 주었다. 하지만 이 구조는 본업의 병을 가리는 진통제에 불과했다. 매장 매출이 정체되는 사이 경쟁자들은 매장 경험 자체를 바꾸고 있었다. 월마트는 물류 비용을 한 푼까지 쥐어짜 가격을 낮췄고, 타깃은 세련된 매장으로 젊은 고객을 끌어들였다. 시어스는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싸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어정쩡한 자리에 갇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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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을 만든 세 번의 실수

시어스의 몰락은 한 번의 사고가 아니었다. 여러 번의 잘못된 선택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였다. 첫 번째는 본업을 잊은 것이다. 회사는 매장을 새롭게 단장하는 대신 금융과 부동산에 돈을 쏟았다. 두 번째는 시대의 변화를 놓친 것이다. 인터넷 쇼핑이 밀려올 때, 카탈로그 판매의 원조였던 시어스는 오히려 온라인에서 가장 늦은 회사가 되었다. 우편 주문이라는 자신의 DNA를 디지털로 옮기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세 번째는 사람을 줄인 것이다. 비용을 아끼려 직원과 매장 투자를 끊자, 고객이 느끼는 매장의 매력마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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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이 규모를 이기다

같은 시기, 두 회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시어스는 백화점과 보험, 증권을 한데 묶은 거대한 복합 기업을 꿈꿨다. 매장은 넓었지만 방향은 흐릿했다. 반대로 월마트는 오직 가격 하나만 바라봤다. 물류를 극한까지 다듬어 같은 물건을 더 싸게 내놓았다. 1989년, 결과가 숫자로 드러났다. 월마트의 매출이 마침내 시어스를 앞질렀다. 미국 소매업의 왕좌가 시카고에서 아칸소의 작은 마을로 넘어간 순간이었다. 두 회사의 차이는 결국 규모가 아니라 집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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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업체가 부동산 회사가 되다

2005년, 헤지펀드를 운영하던 에디 램퍼트가 시어스와 케이마트를 하나로 합쳤다. 그는 두 부실 기업이 서로를 구원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한 애널리스트는 시어스가 이제 소매업체가 아니라 매장을 가진 부동산 회사가 되어버렸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램퍼트는 알짜 매장 부지를 팔고, 그 돈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 집중했다. 주가 방어에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고객이 걸어 들어오는 매장에는 좀처럼 돈이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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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매장에서 일한 사람들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몰락을 가장 먼저 피부로 느꼈다. 재고를 채울 예산이 끊기자 선반은 비어 갔고, 손님들은 빈 진열대를 보고 발길을 돌렸다. 매출이 줄면 회사는 또 매장을 닫았고, 남은 매장은 더욱 초라해졌다. 전형적인 악순환이었다. 한 20년 근속 직원은 본사가 선반을 채우는 대신 자사주만 사들이는 모습을 보며 유령 매장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한때 미국인의 자부심이던 매장은, 이제 사람들이 서둘러 빠져나오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조명이 나가도 갈지 않는 매장, 계산대에 사람이 없어 줄이 길게 늘어선 매장에 대한 불만이 온라인에 쌓여 갔다. 직원들은 회사가 매장을 살릴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유능한 직원일수록 침몰하는 배를 먼저 떠났고, 남은 사람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브랜드가 쌓는 데 100년이 걸렸다면, 무너지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고객의 신뢰가 빠져나가는 속도는 매출 그래프보다 훨씬 가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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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선반이 남긴 숫자

시어스 홀딩스의 재무 기록은 몰락의 속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 동안 회사가 쌓은 손실은 무려 104억 달러에 달했다. 한때 3,500개를 넘던 매장은 파산을 신청하던 2018년에는 700개 아래로 줄었다. 주가는 고점 대비 90% 넘게 빠졌다. 그리고 2026년 현재, 미국 전역에 남은 시어스 매장은 단 다섯 곳뿐이다. 35만 명이 일하던 제국이 남긴 마지막 풍경이었다.

intro

가장 먼저 미래를 배달한 회사의 최후

125년 전, 시어스는 시골 우체통 안에 백화점을 넣겠다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그 상상은 한 시대의 소비를 통째로 바꿔 놓았다. 우편 주문으로 세상의 거리를 좁힌 회사가, 정작 인터넷이 거리를 완전히 지웠을 때는 가장 늦게 움직였다. 세상을 바꾼 회사가 바뀌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시어스의 이야기는 한 기업의 실패담을 넘어, 성공의 방식에 지나치게 오래 머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시어스의 몰락은 경쟁사의 공격 때문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가장 잘하던 것을 스스로 버린 데서 비롯되었다. 우편 주문으로 유통의 미래를 열었던 DNA를 디지털 시대에 되살렸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아마존이 온라인에서 정확히 그 일을 해내며 세계 최대 기업으로 올라선 사실은, 시어스의 실패를 더욱 뼈아프게 만든다. 결국 시어스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시장을 지배하던 강자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외부의 적이 아니라,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려는 내부의 관성이라는 사실이다. 이 경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정점에 우뚝 서 있는 모든 기업에게 여전히 유효하게 울린다. 오늘 우리가 온라인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을 때, 그것은 100년 전 시어스가 꾸던 꿈의 마지막 모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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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watch?v=BNea0xxSbF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