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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어카드 사태 완벽 정리 — 19억 유로는 어떻게 사라졌고, 2인자는 어디로 갔나

와이어카드 사태 완벽 정리 — 19억 유로는 어떻게 사라졌고, 2인자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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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사라진 240억 유로

2020년 6월, 독일에서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시가총액 240억 유로에 달하던 한 회사가 단 며칠 만에 통째로 무너진 것이다. 이 회사는 독일 증시의 자존심이었고, 한때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도이체방크보다 기업 가치가 높았다. 그런데 회사의 장부에 현금으로 적혀 있던 19억 유로, 우리 돈으로 2조 원이 넘는 돈이 실제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돈의 행방을 아는 단 한 사람이 붕괴의 순간에 맞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회계 사기로 기록된 와이어카드 사태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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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스티브 잡스가 만든 신화

이 회사의 이름은 와이어카드였다. 온라인 결제를 대신 처리해 주는 핀테크 기업으로 뮌헨 근교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한 와이어카드는, 결제 기술 하나로 무섭게 몸집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2018년, 90년이 넘은 상업은행 코메르츠방크를 밀어내고 독일을 대표하는 우량주 지수에 입성했다. 유럽은 드디어 미국 실리콘밸리에 맞설 자신들만의 스타 기업을 가졌다며 열광했다. 최고경영자 마르쿠스 브라운은 늘 검은 터틀넥을 입고 무대에 올라 현금이 사라진 미래를 설파했고, 사람들은 그를 유럽의 스티브 잡스라고 불렀다. 화려한 성공의 이미지가 회사를 감쌌고, 누구도 그 이면을 의심하려 들지 않았다.

완벽해 보였던 성장 지표

숫자만 놓고 보면 와이어카드는 완벽한 성공 신화였다. 시가총액은 한때 240억 유로까지 치솟았고, 이는 도이체방크의 기업 가치마저 뛰어넘는 규모였다. 매출은 해마다 두 자릿수로 불어났고, 회사는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필리핀과 싱가포르의 파트너사를 통해 벌어들인다는 이익이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 투자자들은 이 아시아 사업의 숫자를 믿고 앞다투어 돈을 넣었다. 개인 투자자는 물론이고 유럽의 대형 자산운용사와 연기금까지 와이어카드의 주식을 사들였다. 그러나 바로 그 아시아의 숫자야말로, 전체 사기의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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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의심을 지핀 파이낸셜 타임스

의심의 불씨를 처음 지핀 것은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였다. 2019년 1월부터 이 신문은 와이어카드 아시아 지사에서 수상한 회계 처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기사를 연달아 내보냈다. 싱가포르 사무실에서 매출을 실제보다 부풀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서류가 조작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통의 회사라면 즉시 해명에 나섰겠지만, 와이어카드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회사는 그 기사가 주가를 떨어뜨리려는 공매도 세력의 음모라고 강하게 반격했다.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과, 그것을 음모로 몰아세우는 거대 기업의 대치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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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조사한 감독 당국

더 놀라운 것은 규제 당국의 태도였다. 독일 금융감독원은 와이어카드가 아니라 기사를 쓴 기자들과 공매도 투자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동안 와이어카드 주식의 공매도를 금지하는 이례적인 조치까지 내렸다. 거대 기업과 정부 기관이 한편이 되어 한 명의 기자를 몰아세우는 형국이었고, 진실을 말하는 쪽이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기이한 상황이 몇 년이나 이어졌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자 댄 맥크럼은 훗날 그 시절을 두고 모두가 자신에게 미쳤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세계 최고의 감사 기관도, 규제 당국도 전부 반대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단 하나의 단순한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장부의 현금이 진짜라면, 왜 아무도 그 돈을 직접 보여 주지 못하는가. 이 질문 하나가 결국 거대한 신화를 무너뜨리는 열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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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회사의 정체

그렇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돈을 어떻게 진짜처럼 꾸몄을까. 방법은 단순하면서도 교묘했다. 와이어카드는 실제 결제 사업을 대신 처리해 준다는 아시아의 제3자 파트너 회사들을 앞에 내세웠다. 그리고 그 파트너들이 벌어들인 돈이라며 신탁 계좌에 19억 유로가 안전하게 예치돼 있다고 주장했고, 그 잔액을 증명하는 서류를 감사에 제출했다. 회사의 이익 중 상당 부분이 바로 이 신탁 계좌의 현금으로 잡혀 있었다. 문제는 그 파트너 회사들의 정체였다. 대부분 필리핀의 낡은 주택이나 은퇴한 선원의 집 주소로 등록된 껍데기뿐인 회사였다. 존재하지 않는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 계좌에 쌓여 가고 있었던 것이다. 회계 장부 위에서만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유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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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 위의 2조 원, 현실의 0원

2020년, 마침내 진실을 가릴 결정적 감사가 시작됐다. 회사가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독일 회계법인 KPMG에 특별 조사를 맡긴 것이다. 회사가 장부에 적어 둔 현금은 19억 유로로, 전체 이익의 절반을 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조사관들이 그 돈이 있다는 필리핀의 두 은행에 직접 확인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두 은행 모두 와이어카드와는 어떤 거래 관계도 없다고 답한 것이다. 애초에 그런 계좌가 존재한 적조차 없었다. 장부 위의 2조 원과 현실의 0원 사이, 그 아득한 간극이 마침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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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7일

2020년 6월, 마지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6월 18일 회계 감사를 맡은 언스트 앤 영은 19억 유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며 감사 의견 제출을 거부했다. 감사 의견이 없으면 회사는 정상적으로 재무제표를 마감할 수 없다. 다음 날 최고경영자 마르쿠스 브라운은 자리에서 물러났고, 6월 22일 회사는 마침내 그 돈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인정했다. 그리고 6월 25일, 와이어카드는 독일 우량주 지수에 이름을 올린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파산을 신청했다. 주가는 며칠 만에 98퍼센트가 증발했다. 한때 유럽의 자랑이던 회사가 휴지 조각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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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의 순간 사라진 2인자

이 모든 붕괴의 한복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 최고운영책임자 얀 마르살렉, 회사의 2인자이자 모든 의혹의 출발점이던 아시아 사업 전체를 책임지던 사람이었다. 당국이 그의 행방을 쫓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전용기를 타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어디론가 떠난 뒤였다. 붕괴의 순간에 맞춰 정확히 자취를 감춘 것이다. 수사 관계자들이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몇 시간 전에 비워진 상태였다. 수사가 깊어질수록 그가 단순한 기업 임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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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남자

수사가 진행될수록 얀 마르살렉의 정체는 더욱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사업가는 화려한 사교계 인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전혀 다른 얼굴이 있었다. 여러 나라의 정보기관은 그가 오래전부터 외국 첩보망과 연결돼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현재 러시아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수사기관이 그를 쫓고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붙잡히지 않았다. 유럽 최대의 회계 사기 사건은 이렇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진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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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남긴 상처와 교훈

와이어카드가 남긴 상처는 숫자로 고스란히 남았다. 사라졌다고 발표된 현금은 19억 유로, 붕괴 직전 회사의 가치는 240억 유로였다. 이 돈을 믿고 노후 자금까지 투자한 수십만 명의 개인 투자자들은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었고, 회사에 돈을 빌려준 은행들이 떠안은 손실만 수십억 유로에 달했다. 무엇보다 유럽 최고라던 감독 기관이 몇 년 동안 이 거대한 거짓말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다. 이 사건 이후 독일은 회계 감사와 금융 감독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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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믿고 싶어 한 이야기

와이어카드는 유럽이 실리콘밸리에 맞서 키운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의 절반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숫자 위에 세워진 신기루였다. 가장 엄격하다던 유럽의 감독 시스템조차 모두가 믿고 싶어 한 이야기 앞에서는 눈을 감았다. 이 사건은 화려한 성장 서사에 도취되면 아무리 정교한 감시 체계도 무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성공 신화를 접한다. 그중 몇 개가 진짜이고 몇 개가 신기루인지, 그 답은 대개 무너진 뒤에야 드러난다. 사라진 19억 유로는 지금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그 돈의 행방을 아는 단 한 사람은 오늘도 어느 도시의 그늘 속에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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